남는 건 사진뿐이라던데, 그러면 나는 남은 게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찍어준 어린 시절 사진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건 내가 주기적으로 치르는 이상한 ‘의식’ 때문이었다. 삶이 어딘가 무너져버렸다고 느끼는 날이면, 컴퓨터를 껐다 켜듯 삶을 초기화하기 위해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각종 사이트 아이디를 삭제하고, 은행 계좌를 없애고, 애꿎은 전화번호부를 비우고, 가지고 있는 사진을 몽땅 지워버렸다. 그런다고 무언가 달라질 건 없었지만, 어쩐지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들어 잠시나마 상쾌했다. 물론 옛날을 추억할 사진 한 장 남지 않게 됐다는 건 섭섭한 일이었다. 동생과 둘이 중국 여행을 갔을 때도,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머물던 때도,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상의 순간들도, 남들처럼 사진을 보며 새록새록 떠올릴 순 없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오늘이라며 오래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나는 그렇게 부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정원이와 일본에 가게 됐을 때는, 사진을 많이 남겨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지우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찾은 다카마쓰라는 항구도시 근처 섬들에서는 3년마다 예술제가 열리고 있었다. 6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은 정원이는, 이누지마 섬에서 바라본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들려주곤 했다. 나는 듣던 대로 과연 아름다운 바다를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외딴집을 찍을 때는, 정원이가 6년 전 자신도 저 집을 찍었다고 말해줬다. 그 후로도 한참을 섬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오래 걸었더니 발이 아프고 배 시간에 쫓겨 마음이 급했지만, 내게도 오늘을 추억할 사진이 생겼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했다.
삶을 종종 버거워했던 정원이가 활짝 웃는 모습도 참 좋았다. 그 외에도 빛나는 순간이 정말 많았는데, 정작 그런 순간들은 사진으로 남지 못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하늘과 바람을 응시하며 평온함을 느끼던 데시마 미술관은, 촬영이 금지돼 있었다.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항구로 향하던 길, 바다가 보이는 내리막에서 앞서가는 정원이 머리 위로 햇살 한 줌이 떨어질 때는, 달리는 자전거 위라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이렇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사진으로 남지 않아도 기억에는 남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한국 돌아가서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
여행이 끝나갈 무렵, 벌써 걱정부터 앞서는 나의 부탁에 정원이는 꼭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나 역시 이곳의 추억을 품고 잘 지내봐야지 다짐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면, 삶을 껐다가 켜고 싶은 날이 다시 찾아와도 조금은 덜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그러니 어제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이지 기뻤다. 사진 말고는 남는 게 없다던 여행은 내게 이런 것들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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