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를 걷는 것 같아
모래사장을 거닐며 짝꿍에게 말했다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하얗고 곱다니
짝꿍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까마득한 미래에도 우리는 부서지고 있는 거냐고 묻지 못했지만
모래사장을 거닐며 짝꿍에게 말했다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하얗고 곱다니
짝꿍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까마득한 미래에도 우리는 부서지고 있는 거냐고 묻지 못했지만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알알이 부서진 미래를 모아 성을 쌓았다
검은 파도가 금세 성을 집어삼켰다
다시 성을 쌓고 마을을 만들면 검은 파도는
우리의 발까지 집어삼켰다
짝꿍이 또다시 그을린 팔다리로 조개껍데기를 주워 성벽을 장식하면
나는 또다시 무너질 성을 생각했다
부서진 미래가 전부 바다로 쓸려 가 버리면 우리는 어떡할까
알알이 부서진 미래를 모아 성을 쌓았다
검은 파도가 금세 성을 집어삼켰다
다시 성을 쌓고 마을을 만들면 검은 파도는
우리의 발까지 집어삼켰다
짝꿍이 또다시 그을린 팔다리로 조개껍데기를 주워 성벽을 장식하면
나는 또다시 무너질 성을 생각했다
부서진 미래가 전부 바다로 쓸려 가 버리면 우리는 어떡할까
그러면 내 미래를 나눠 줄게
짝꿍은 두 손 가득 모래를 들어 올렸다
함께 꿈꾸면 그 미래는 커질까 아니면 작아질까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래를 다 쓰면 너의 미래를 가져다 살게
다시 성을 쌓아 올리고
짝꿍은 두 손 가득 모래를 들어 올렸다
함께 꿈꾸면 그 미래는 커질까 아니면 작아질까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래를 다 쓰면 너의 미래를 가져다 살게
다시 성을 쌓아 올리고
(박은지, <짝꿍의 모래> 중에서)
대학원 졸업을 앞둔 정원이는 틈만 나면 베트남 여행 정보를 검색했다. 일상을 자주 버거워하던 정원이가 그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행복해 보였다. 1월에도 따뜻하다는 나라를 누비는 상상을 할 때면 머리 아픈 논문 생각도, 새로 구해야 하는 작업실 생각도,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벌어야 할 생활비 생각도 잠시 미뤄둘 수 있었다. 기다려지는 것이 별로 없는 요즘이지만, 여행만큼은 어서 왔으면 싶은 기대되는 것이었다.
나도 1월에 떠나는 여행이 퍽 기대됐다. 쑥스러운 새해 다짐 같은 건 이뤄질 리 없었지만, 며칠간의 설레는 계획 정도는 잘만 하면 지켜질 수도 있으니까.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고 지난날을 떠올리면 후회가 뒤따르는 연말을 보냈다. 튼튼하고 근사한 모래성을 쌓아보고 싶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나는 성은 안 쌓고 괜스레 모래만 만지작거리거나, 이미 떠내려간 모래알을 멍하니 바라만 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성을 모래로 짓겠다던 나의 포부는 얼마나 장난 같은 생각이었을까. 못된 누군가의 발길질 없이도, 때 되면 찾아오는 파도 몇 번에 금방 물거품이 될 꿈이었다.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넘어가던 날,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찾아다녔다. 이제 그만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 이 위령비에서 저 위령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런 말에 관해 정원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란 또 어떤 삶들을 집어삼키고 나아간 것일까. 한편 여행 도중 한국에 있는 옛 친구의 미래가 아주 없어져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의 미래를 집어삼킨 현재의 삶이란 또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숙소에서 나와 과일가게에 잠깐 다녀오던 길에는 난데없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내일도 이러려나. 일기예보가 있다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불투명한 것투성이인 날들 속에서, 미래라는 그림은 도대체 어떻게 그리는 것일까. 청사진이라는 사진도 있다던데, 그건 또 어떻게 찍는 걸까. 알려주는 사람이 없네. 정원과 나는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들을 곁눈질하며, 조금은 시시한 모래벌판을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