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벽돌이 짓는 시>는 故 김수근 건축가가 건축을 정의한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람을 고문하기에 최적화된, 끔찍하도록 정교한 이 건축물은 오랜 시간 동안 끔찍한 국가폭력의 공간으로 쓰였다. 피해자만 최소 4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김수근을 위한 ‘변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정말 고문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설계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그렇기에 그를 국가폭력의 공모자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와 나선형 철제계단을 헛디디던 발걸음 앞에서 방향을 잃고, 피해자들의 비명을 빨아들이던 조사실 벽면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검은 벽돌에 좁은 창을 낸 김수근의 ‘작품’은 민중이 아닌 국가를 위한 예술이 어떻게 가해가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예술이 언제나 끔찍한 것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가 고문시설을 설계했다는 아픈 역사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자행되는 국가폭력의 현장에 예술로 연대하며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문학, 미술, 음악 등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을 옛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으로 초대해 촬영을 진행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김진열은 2004년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에 <남매와 진달래>로 참여했다. 영화는 문민정부 1호 조작사건으로 알려진 ‘남매간첩단 사건’의 김삼석, 김은주 남매가 지나온 10년의 세월을 조명한다. 박미리 지휘자가 함께하는 416합창단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앨범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를 발표했다. 노래에 실린 그리운 마음들은 때로는 ‘겨울을 끝낼 봄날의 꽃송이’가, 때로는 ‘깎일수록 강해지는 돌덩이’가 된다. 작가 박정원은 폭력적인 강제집행에 맞서 세입자 생존권 사수를 외치는 명동재개발2지구 농성장의 풍경을 화면에 옮겼다. 그림은 투쟁의 현장에서 위로와 다짐, 희망을 약속하는 행위로서 반복되는 기도회의 촛불을 가까이서 포착한다. 희음 시인은 기후위기 시대에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이는 국가에 대항해 모든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그의 시 <돼지와 돼지와 돼지와 돼지>는 공장식 축산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존재들을 애도한다. 4명의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이 ‘빛과 벽돌로 지었다는 시’ 곳곳을 침투하고 점유함으로써, 대공분실 공간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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